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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우아한테크코스

[우아한테크코스 5기] 레벨 1 중간 회고

by 재영(ReO) 2023. 2. 27.

나의 글이 누군가의 길과 빛과 아픔과 증오가 되는 것에 화들짝 놀라서 붓을 꺾었고, 어느덧 두 번의 겨울을 보냈다.

 

감정 회고의 필요성에 대한 포비의 역설(力說)에도 망설였지만, 고뿔에 열이 올라서인지 감정이 살짝 삐져나와서 오래간만에 글 위로 마음을 담아본다.

 

나는 지금 즐겁고 두렵다. 

 

우아한테크코스에 합류한 지 한 달여가 되어간다. 처음 자대 배치를 받은 날만큼이나 정신없는 나날들이 오래 이어졌다. 날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마주하고 대화가 꽤 즐겁다. 겨우 레벨 1의 절반이 지났을 뿐인데, 무지막지한 일들과 감정들이 쏟아졌다. 이렇게 뒤흔들리면 결국 치장이 다 떨어질 터라 두렵다.

 

그런데, 우아한테크코스는 참 이상한 곳이다.

모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갈아왔던 시간과 노력을 의아해한다. 왜 분칠을 하냐며 자꾸 나무란다. 정 맞기 전의 형(型)으로 돌아가라 한다. 정월 영금정에서 보이는 바다마냥 모든 걸 다 포용해 줄 것 같은 소리를 낸다. 이번엔 다르려나, 하는 기대로 즐겁고 그만큼 두렵다.

 

나는 또 즐겁고 두렵다.

 

투수들의 공을 20여 년 받다 보니 어느 시점 이후로는 야구공이 하나의 사념체가 되었다. 그래서, 미트에 볼이 닿는 순간 던지는 이의 대략적인 성격 따위의 것들을 어느 정도 맞출 수 있게 됐다. 음악과 글은 말할 것도 없고. 놀랍게도, 이르긴 하지만 코드를 읽으면서 유사한 경험을 했기에 즐겁다. 동시에, 나의 코드 위로 내가 오롯이 담겨있지 않아서 두렵다. 수천수만 번 반복된 동작에야 비로소 자아가 실리는데, 난 아직 절대적인 작성량이 턱없이 부족하기에 코드에 나를 담지 못 함을 알고 있다.

 

허나, 아직 개발 전반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는 햇병아리임에도 프로그래밍 자체가 참 즐겁다. 한참을 사부작거리다가 무언가 작동하는 것을 내놓으면 그게 그렇게 보람찰 수가 없다. 그래서 또 두렵다. 함께 하는 크루들에 비해 늦은 나이에 시작해서, 성에 찰만큼 오래 개발을 즐기기에는 물리적 시간의 여유가 부족할까봐 염려가 된다.

 

요즘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크루는 띠동갑인 베베다. 사는 지역이 비슷해서 아침에 운동을 같이 한다. 그리고 매일 밤 11시까지 함께 공부하고 같은 버스를 탄다. 

나는 베베의 나이가 부럽지 않다. 물리적인 시간의 양은 잘 쳐줘도 기껏 기대수명 정도에만 상관관계가 약간 있을 뿐이다. 같은 세월을 보낸 이들은 똑같이 늙지 않는다. 얼마나 집중도 높게 삶을 살아냈는지에 따라 다르다. 그래서 나는 나이보다 어리게 보인다는 말이, 삶에 불성실했다는 방증 같아서 달갑지가 않다. 적어도 나이에 맞는 현명함은 가진 이가 되고 싶음에 그렇다. 

그래서 나는 베베가 부럽다. 훌륭한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우아한테크코스에 참여한 각오가 부럽다. 그런 각오를 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의 깊이”가 부럽다. 나는 남에게 부럽다는 감정을 전혀 느끼지 않는 부류의 인간임에도 그렇다. 띠동갑과 스스럼없이 장난을 치고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집중도 있게 살아낸 인생에게서 기분 좋은 자극과 원동력을 얻는 요즘이다.

 

아, 기분이 날아갈 듯한 일도 있었다. 온보딩 조에서 연극을 잘 마친 뒤, 조원들끼리 롤링페이퍼를 했다. 고마운 누군가에게 “만나본 사람 중 처음으로 형이라는 느낌을 준 사람”이라는, 분에 넘치게 황송한 글을 받았다. 태어나서 받아본 모든 칭찬 중에 가장 울림이 컸다.

 

그동안 두 명의 크루와 짝 프로그래밍을 했다. 한 명과는 지금 다시 떠올려도 슬쩍 미소가 지어지도록 즐거웠지만, 한 명과는 그럭저럭 해냈다. 진정 “형 같은 이”라면 상대가 누구든 동일한 효율과 시너지를 내도록 할 수 있어야 하므로, 갈 길이 멀다고 느꼈다.

 

길이 보이지는 않는데, 빛은 보이는 듯한 요즘이다. 나만의 길을 닦아 나가는 과정이 충분한 아픔이고 때로는 넘쳐서 증오가 되겠지만, 빛이 보이니 우선 좇아야 하지 않을까. 

 

앞으로는 책과 코드에 더욱 짓눌려 살아야 하므로 이런 감정회고가 언제 또 가능할지는 모르겠다만, 레벨 1의 반절을 남겨두고 많이 비워낼 수 있었다. 적으려고 노력해야겠다.

 

 

#우테코